호남의 맛 자연의 색깔…영산포의 겨울 맛깔나네
- 작성일
- 2008.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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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http://www.segye.com/Articles/NEWS/CULTURE/Article.asp?aid=20081211003260&subctg1=&subctg2=
호남의 맛 자연의 색깔…영산포의 겨울 맛깔나네
내륙수송의 거점이며 호남 곡창지대
전주·나주 합해서 ‘전라도’일 만큼 지형적 가치 커20081211003260나주는 전주와 더불어 ‘전라도’라는 이름을 구성한다. 삼한시대는 물론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의 초석을 다진 뒤, 그 아들 혜종이 머물다 간 이래 나주는 역사의 굽이마다 호남과 한양을 잇는 관문이었다. 하나 전주가 비빔밥과 한옥 등으로 전통 이미지를 빚어온 반면에 나주의 이미지는 성긴 데가 많다. 나주는 곡창지대이면서도 제법 많은 이들에게 잊혀진 ‘과거의 목사골’이었다. 그나마 ‘나주 배’로 그 이름을 이어온 정도였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배가 산출되는 지역이 한강 이남까지 확장되면서 그 이미지마저 희미해졌다. 이렇게 잊혀진 ‘작은 한양’ 나주가 최근 몇 년 사이 추억과 영광을 되살려내고 있다. 고비마다 한복판에서 역사의 페이지를 장식한 전통이라는 게 그리 쉽게 사그라지는 개념은 아니지 않은가.
방송 드라마 ‘주몽’과 ‘바람의 나라’를 촬영한 장소를 찾는 가족단위 방문객이 늘어나고, 6월부터 30년 만에 출항한 영산강변의 황포돛배에 승선하려는 이들의 행렬도 이어진다. 소설가 한승원의 말이 아니더라도 나주는 봄과 여름이면 강물에 어린 배꽃 그림자로 출렁거린다. 풍요로운 그곳에서 사람들은 배꽃 어린 강물의 그림자처럼 물 흐르듯 꽃피듯이 살아간다.
‘쪽빛’ 천연 염색
나주에서는 가을이 지나간 곳에서도 여전히 파란 하늘빛이 아른거린다. 이곳에서 보는 맑고 파란 하늘빛은 이름까지 아름다운 ‘쪽빛’이다. 나주는 이제 쪽빛도시로 불리기도 한다. 화학염료의 등장으로 자리를 내준 천연 염색이 새롭게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일제 때 나주에서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천연 염료를 많이 생산했다. 예전부터 영산강 유역의 나주 샛골 천연 염색은 유명했다. 영산강의 물줄기와 서해의 바닷물이 합류해 원료가 되는 ‘쪽풀’의 성장에 최적 환경이기 때문이다. 섬유 염색도시가 대구라면, 나주는 천연 염색 도시로 인정받고 있다. 천연의 쪽빛은 1년초 염료식물인 ‘쪽풀’에서 남빛 색소를 분리해 염료로 사용한다. 조개껍질에서 얻는 석회가루를 활용하는 등 쪽 염색은 모든 것을 자연에서 얻는다.
몇 해 전 다시면 회진리에 천연염색문화관(www.naturaldyeing.or.kr/061-335-0091)이 등장한 것은 자연스런 흐름이었다. 문화관은 오전 10시부터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3000원의 비용으로 손수건 하나 정도는 물들여 볼 수 있다. 방문 당일에도 아이들이 손수건에 물을 들이며 흥겨워하고 있었다. 공방에서는 교육을 받고, 체험장에서는 공예체험이 가능하다. 숙박할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까지 운영되고 있다.
30년 만에 돌아온 황포돛배
나주 영산포는 조선시대에 인근 17개 고을의 세곡을 저장하는 창고(영산창)가 있을 정도로 번창했다. 40년 전까지도 호남 내륙 수운의 거점이었다. 하지만 육로가 교통의 중심이 되고, 상류의 댐과 하굿 둑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영산강은 쇠락했다.
그러나 쇠락한 영산강이 조금씩 활기를 찾고 있다. 지난 6월 30년 만에 정식으로 돌아온 황포돛배 2척도 영산강 재생 프로젝트의 주요 영역을 담당한다. 흑산도, 영산도, 칠산도를 거쳐 영산포까지 홍어, 소금, 미역, 곡물, 젓갈 등을 싣어 나르던 황토돛배를 운항해 영산강의 정취가 살아나고 있는 덕택이다.
황포돛배는 다시면 석관정에서 공산면 다야뜰까지 왕복 6㎞ 구간을 30∼40분간 운항한다. 남도의 강변을 따라 거슬러 오르는 낭만 여행의 상징으로 등장해 6개월 동안 가족 나들이객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탑승료는 성인 5000원, 청소년 4000원, 어린이 3000원이다. 4명 이상이면 운항한다. 요즘은 겨울이라 날씨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운항된다면 영산강의 물결을 따라 남도의 풍광과 주몽 드라마 세트장, 겨울새, 해거름의 노을 등을 맘껏 감상할 수 있다.
한국의 강이 대개 높은 산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물줄기를 모아 시작되지만, 나주의 영산강은 평야에서 시작된다. 드라마 ‘주몽’과 ‘바람의 나라’의 촬영지인 ‘나주영상테마파크’에서 영산강을 굽어본다. 나주 들판이 끝없이 펼쳐지고, 눈으로 가늠할 만한 곳에 영산강이 들판을 휘감아 돈다. 눈을 뜨면 어느 곳이나 평야인 듯한 나주는 사계절 언제나 아름다운 고장이다. ‘나주영상테마파크’에서 황포돛배를 바라보면 ‘역사’가 무거운 주제로만 다가오지 않는다.
목사 관아에서 하룻밤을
전통과 역사가 남아 있는 나주를 구석구석 섭렵하다 보면 짧아진 겨울 해가 아쉽다. ‘한옥 여관’으로 한참 탈바꿈하고 있는 금계동의 나주 목사 내아를 찾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나주 목사가 머문 관아에서 밤을 보내며 ‘하룻밤 목사’가 되는 호사를 누려본다. 남녀 화장실을 분류하고 세면장이 설치돼 조상이 겪었던 불편함은 사라졌다. 내부 벽지와 전등도 깔끔하다. 안채 5개 방과 문간채의 3개 방을 아궁이의 군불이 달궈 아침까지 온몸이 뜨겁다. 내아 마루에서 낮에는 따뜻한 햇살에 얼굴을 불콰하게 달구고, 밤에는 온돌방에서 명시 한 구절 읊으면서 엉덩이를 맡기면 안온한 충일감이 밀려오리라.
나주의 목사 내아는 조선시대 나주목에 파견된 지방관리인 목사가 머물던 살림집이다. 조선시대 20개의 목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내아다. 나주시는 외국인과 단체 등 특별한 목적을 지닌 이들이 방문하면 이곳에서 숙박할 수 있도록 도울 생각이다. 시기와 숙박 방식은 문화재청과 조율을 거쳐서 내년 초에 공지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