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것을 지키는 사람들 (11)염색장 정관채씨<전남 나주>
- 작성일
- 2012.04.24 14:58
- 등록자
- (재)나주시천연염색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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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것을 지키는 사람들 (11)염색장 정관채씨<전남 나주>
“쪽빛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색”

①중요무형문화재 제115호 염색장 기능보유자 정관채씨가 쪽 염색 후 햇볕에 말리고 있는 천을 살펴보고 있다. 정씨는 이 단계를 ‘햇볕과 바람의 합작’이라 말한다. ②③④정관채씨가 만든 쪽 염색 작품들.
1960년대만 하더라도 ‘있는 집’ 새색시가 시집올 때 시댁에서는 이불보를 먼저 열어봤다. 살짝 엿본 이불보에 푸른 쪽물이 들어 있으면 동네 사람들을 모두 불러 이불을 펼쳐 보이며 며느리 자랑을 입에 침이 마르게 했다. 그때만 해도 쪽물은 ‘참물’이라며 대접을 받았고, 합성염료는 천한 물이라 하여 ‘깡물’이라 불렸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며 편리함을 내세워 깡물이 참물을 잠식했고 오래지 않아 쪽은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이런 가운데 1970년대 말, 전남 나주시 다시면에 다시 쪽씨를 뿌린 이가 있었으니, 바로 반평생을 쪽 염색에 바친 국내 유일의 염색장(중요무형문화재 제115호) 기능보유자 정관채씨(51·가흥리)다.
정씨가 나고 자란 이 지역은 예부터 염직(염색과 직조) 문화가 발달했다. 고온다습하고 일조량은 풍부했으나, 여름만 되면 영산강이 범람해 마땅히 키울 작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습기에 강한 목화와 쪽을 많이 심었고 여기서 만들어진 무명천은 다시면의 옛 이름을 따 ‘샛골나이’라 불리며 일본에 교역품으로 보내졌다.
미대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그가 다시 고향으로 내려온 건 민속학자 예용해 선생의 권유를 받고 나서다. 그의 대학 스승의 스승인 예선생은 정씨에게 쪽씨를 건네며 뒤를 잇기를 부탁했다. 그때부터 정씨와 쪽의 인연이 시작됐다. 쪽 염색만으로는 생계가 쉽지 않아 나주 영산중학교의 미술교사로도 취직했다.
정씨는 쪽색에 대해 “하늘의 색, 바다의 색처럼 남색에 약간 붉은 빛이 얹힌 오묘한 색”이라고 정의한다. “쪽빛이야말로 하늘을 숭상하고 음양오행사상을 숭배한 우리 민족의 색”이라는 것.
바로 이 오묘한 빛깔의 쪽물을 내기까지 작업은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다. 치자·쑥 등 끓이면 재료 본래의 색이 나오는 여느 천연 염료들과 달리 쪽은 초록빛 풀에서 검푸른 쪽빛을 ‘만들어 내야’ 한다.
먼저 7월 초중순 꽃이 피기 직전의 쪽풀을 손으로 일일이 수확한다. 날이 더울수록 좋은 염료가 나오는 까닭에 그는 삼복더위에 더욱 바빠진다.
수확한 쪽풀을 항아리에 넣고 미지근한 물에 이틀간 담가 쪽물을 우려낸다. 여기에 12시간 동안 구운 조개껍질로 만든 석회가루를 넣고 30분 정도 저으면 남색 거품이 일면서 색소가 아래로 가라앉는다. 윗물은 버리고 침전물을 그늘에 말리면 개흙처럼 생긴 쪽 염료가 만들어진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태운 쪽대에 끓는 물을 부어 만든 잿물과 쪽 염료를 큰 항아리에 5대 1 비율로 넣고 따뜻한 곳에서 발효시킨다. 보름 동안 매일 저어 주면 그제서야 쪽물이 완성된다.
이렇게 만든 쪽물에 면·모시·마 같은 천연 원단을 잘 펴서 한두시간 담가 두면 천이 청록색으로 물든다. 맑은 물에 여러차례 씻어 잿물을 빼고 햇볕에 널면 천이 자연스레 쪽빛으로 바뀐다. 정씨는 이를 ‘햇볕과 바람의 합작품’이라고 표현한다.
쪽 염색 시범을 보이는 그의 손끝이 검다. 26년간 하루도 쉬지 않고 쪽물과 염색천을 만진 까닭에 손톱에 아예 검은 물이 들어 버렸다. 손끝을 보다 보니 다른 손가락보다 약간 짧은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이 눈에 띈다.
“아, 이거요? 10년 전에 쪽잎을 찧다가 기계에 잘렸어요. 잘린 손가락 들고 병원에 가면서도 아픈 건 생각도 못하고 앞으로 염색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했죠.” 허허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는 그에게서 못 말리는 장인의 열정이 느껴진다.
요즘 그는 쪽 염색 청바지를 만들어 내겠다는 쪽빛 꿈을 꾸고 있다. 이 청바지를 해외 각국으로 수출해 우리 고유의 쪽빛을 세계에 알리고 농가소득도 높이겠다는 포부다. 이를 위해 그는 쪽풀 수확 같은 일정 작업을 기계가 대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라도 해야 많은 사람들이 좋은 빛깔을 싼 값에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에서 쪽 염색 대중화에 대한 장인의 고민이 엿보였다.
정씨는 기술을 널리 알리는데도 매진중이다. 현재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의 후원을 받아 천연염색 전문가들과 염색을 공부하는 학생 등 일반인에게 매년 무료강습회를 열고 있다(올해는 7월9일까지). 그는 “기술을 전수 받겠다고 나서는 젊은이가 별로 없어 걱정”이라고 아쉬워했다.
‘청출어람(靑出於藍).’ 제자가 스승보다 낫다는 뜻의 이 사자성어는 본래 쪽풀에서 뽑아낸 푸른 물감이 쪽보다 더 푸르다는 의미다. 정씨는 오늘도 자신에게 기술을 이어받아 청출어람을 제대로 펼쳐 보일 젊은 제자가 하루 빨리 나타나길 기다린다.
이런 가운데 1970년대 말, 전남 나주시 다시면에 다시 쪽씨를 뿌린 이가 있었으니, 바로 반평생을 쪽 염색에 바친 국내 유일의 염색장(중요무형문화재 제115호) 기능보유자 정관채씨(51·가흥리)다.
정씨가 나고 자란 이 지역은 예부터 염직(염색과 직조) 문화가 발달했다. 고온다습하고 일조량은 풍부했으나, 여름만 되면 영산강이 범람해 마땅히 키울 작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습기에 강한 목화와 쪽을 많이 심었고 여기서 만들어진 무명천은 다시면의 옛 이름을 따 ‘샛골나이’라 불리며 일본에 교역품으로 보내졌다.
미대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그가 다시 고향으로 내려온 건 민속학자 예용해 선생의 권유를 받고 나서다. 그의 대학 스승의 스승인 예선생은 정씨에게 쪽씨를 건네며 뒤를 잇기를 부탁했다. 그때부터 정씨와 쪽의 인연이 시작됐다. 쪽 염색만으로는 생계가 쉽지 않아 나주 영산중학교의 미술교사로도 취직했다.
정씨는 쪽색에 대해 “하늘의 색, 바다의 색처럼 남색에 약간 붉은 빛이 얹힌 오묘한 색”이라고 정의한다. “쪽빛이야말로 하늘을 숭상하고 음양오행사상을 숭배한 우리 민족의 색”이라는 것.
바로 이 오묘한 빛깔의 쪽물을 내기까지 작업은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다. 치자·쑥 등 끓이면 재료 본래의 색이 나오는 여느 천연 염료들과 달리 쪽은 초록빛 풀에서 검푸른 쪽빛을 ‘만들어 내야’ 한다.
먼저 7월 초중순 꽃이 피기 직전의 쪽풀을 손으로 일일이 수확한다. 날이 더울수록 좋은 염료가 나오는 까닭에 그는 삼복더위에 더욱 바빠진다.
수확한 쪽풀을 항아리에 넣고 미지근한 물에 이틀간 담가 쪽물을 우려낸다. 여기에 12시간 동안 구운 조개껍질로 만든 석회가루를 넣고 30분 정도 저으면 남색 거품이 일면서 색소가 아래로 가라앉는다. 윗물은 버리고 침전물을 그늘에 말리면 개흙처럼 생긴 쪽 염료가 만들어진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태운 쪽대에 끓는 물을 부어 만든 잿물과 쪽 염료를 큰 항아리에 5대 1 비율로 넣고 따뜻한 곳에서 발효시킨다. 보름 동안 매일 저어 주면 그제서야 쪽물이 완성된다.
이렇게 만든 쪽물에 면·모시·마 같은 천연 원단을 잘 펴서 한두시간 담가 두면 천이 청록색으로 물든다. 맑은 물에 여러차례 씻어 잿물을 빼고 햇볕에 널면 천이 자연스레 쪽빛으로 바뀐다. 정씨는 이를 ‘햇볕과 바람의 합작품’이라고 표현한다.
쪽 염색 시범을 보이는 그의 손끝이 검다. 26년간 하루도 쉬지 않고 쪽물과 염색천을 만진 까닭에 손톱에 아예 검은 물이 들어 버렸다. 손끝을 보다 보니 다른 손가락보다 약간 짧은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이 눈에 띈다.
“아, 이거요? 10년 전에 쪽잎을 찧다가 기계에 잘렸어요. 잘린 손가락 들고 병원에 가면서도 아픈 건 생각도 못하고 앞으로 염색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했죠.” 허허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는 그에게서 못 말리는 장인의 열정이 느껴진다.
요즘 그는 쪽 염색 청바지를 만들어 내겠다는 쪽빛 꿈을 꾸고 있다. 이 청바지를 해외 각국으로 수출해 우리 고유의 쪽빛을 세계에 알리고 농가소득도 높이겠다는 포부다. 이를 위해 그는 쪽풀 수확 같은 일정 작업을 기계가 대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라도 해야 많은 사람들이 좋은 빛깔을 싼 값에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에서 쪽 염색 대중화에 대한 장인의 고민이 엿보였다.
정씨는 기술을 널리 알리는데도 매진중이다. 현재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의 후원을 받아 천연염색 전문가들과 염색을 공부하는 학생 등 일반인에게 매년 무료강습회를 열고 있다(올해는 7월9일까지). 그는 “기술을 전수 받겠다고 나서는 젊은이가 별로 없어 걱정”이라고 아쉬워했다.
‘청출어람(靑出於藍).’ 제자가 스승보다 낫다는 뜻의 이 사자성어는 본래 쪽풀에서 뽑아낸 푸른 물감이 쪽보다 더 푸르다는 의미다. 정씨는 오늘도 자신에게 기술을 이어받아 청출어람을 제대로 펼쳐 보일 젊은 제자가 하루 빨리 나타나길 기다린다.